뉴질랜드 자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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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자치령(영어: Dominion of New Zealand, 마오리어: Te Tominiana o Aotearoa)은 뉴질랜드 식민지(영어판)의 역사적인 계승국이었다. 뉴질랜드 자치령은 대영제국 내에서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가진 입헌군주국이었다.
뉴질랜드 자치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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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on of New Zeal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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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하느님, 국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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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웰링턴 | |||
정치 | ||||
정치체제 |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 |||
군주(영어판) 1907년 ~ 1910년 1910년 ~ 1936년 1936년 1936년 ~ 1947년 | 에드워드 7세 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 |||
총독(영어판) 1907년 ~ 1910년 1946년 ~ 1947년 총리 1907년 ~ 1912년 1940년 ~ 1947년 | 윌리엄 플렁킷(영어판) (초대) 버나드 프레이버그(영어판) (말대) 조셉 워드(영어판) (초대) 피터 프레이져 (말대) | |||
입법부 | 뉴질랜드 의회(영어판) 입법위원회(영어판) (상원) 대의원 (하원) | |||
역사 | ||||
• 자치령 선언(영어판) | 1907년 9월 26일 | |||
• 웨스트민스터 헌장(영어판) | 1947년[주 1] 11월 25일 | |||
인문 | ||||
공용어 | 영어, 마오리어 | |||
경제 | ||||
통화 | 뉴질랜드 파운드[주 2] |
뉴질랜드는 1841년 별도의 영국 왕령식민지가 되었고 1852년 헌법(영어판)과 함께 책임정부가 생겼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영어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1907년 9월 26일, 자치령의 날(영어판),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선포로 뉴질랜드는 자치령이 되었다. 자치령 지위는 책임정부를 통해 반세기에 걸쳐 발전해 온 정치적 독립의 표시였다.
1907년 뉴질랜드에는 100만명 미만의 사람들이 살았고 오클랜드와 웰링턴과 같은 도시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1] 뉴질랜드 자치령은 영국 정부가 외교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허락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을 따랐다. 1923년과 1926년 대영제국회의(영어판)는 뉴질랜드는 자국의 정치적 조약을 협상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결정했고, 최초의 상업 조약은 1928년 일본과 비준되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뉴질랜드 정부는 스스로 그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전후에는 자치령이라는 용어가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과 함께 완전한 독립이 승인되었고 1947년 뉴질랜드 의회에 의해(영어판) 채택되었다. 그러나 1907년 왕실의 통치권 선포는 폐지된 적이 없으며 오늘날에도 시행되고 있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