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성 참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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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참정권(Women's suffrage in the United States)은 주와 지방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점진적으로 실현되었으며, 1920년 미국 수정 헌법 제19조의 통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이 헌법에서는 선거를 할 수 있는 미국 시민의 권리가 미합중국이나 어떠한 주에서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1844년 6월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자유당은 대선을 위해 ‘여성 참정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다음 달 7월, 세네카 폴즈 컨벤션에서 미국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 요구가 이뤄졌다. 1850년대의 ‘전국여성권리 컨벤션’(National Women's Rights Convention)과 루시 스톤은 여성 참정권 청원을 여러 주에 했으며, 스톤은 1853년 매사츠세츠 헌법 컨벤션에서 많은 의원들 앞에서 연설을 하였다.[2] 이러한 격동은 남북 전쟁을 거치며 주춤했지만, 1865년 전국여성권리위원회(National Woman's Rights Committee)가 의회에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시민권을 축소시킨 여러 주의 조치를 금지하기 위해 미국 헌법을 수정하라는 청원을 함으로써 재개되었다.[3] 그러나 여성이 아니라 흑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미국 수정 헌법 제15조의 비준을 지원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견불일치로 인해 수전 B. 앤서니와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이 설립한 ‘전국 여성 참정권 협회’(National Woman Suffrage Association, NWSA)와 루시 스톤과 줄리아 워드 하우가 세운 미국 여성 참정권 협회(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 AWSA) 2개의 경쟁 단체로 갈라졌다. 두 단체 모두 처음에는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는 수정 헌법 제16조 운동을 관철시키기 위해 활동하였지만, AWSA는 점차 주와 지방에서 선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함으로써 연방의 조치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점점 방향을 바꾸었다. 1889년, 이 단체들은 ‘전미 여성 참정권 협회’(National 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로 통합되게 되고, 1900년 이후, 진보의 시대에 개혁을 주장하게 된다.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1917-1918)에 대한 여성의 기여는 최후의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