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엄 마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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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질 미리엄 마케바(Zenzile Miriam Makeba, 1932년 3월 4일 ~ 2008년 11월 9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싱어송라이터, 배우, 국제 연합의 친선대사이자 인권 운동가이다. 아프로팝과 재즈, 월드 뮤직을 포함한 음악 장르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주의 및 소수의 백인이 이끄는 정부에 반하는 메시지를 노래하였다.
미리엄 마케바 Miriam Makeb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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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젠질 미리엄 마케바 |
출생 | 1932년 3월 4일(1932-03-04) 남아프리카 연방 요하네스버그 |
사망 | 2008년 11월 9일(2008-11-09)(76세) 이탈리아 카스텔볼투르노 |
성별 | 여성 |
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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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
활동 시기 | 1953년~2008년 |
레이블 | |
관련 활동 |
요하네스버그에서 스와지족과 코사족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마케바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린 시절부터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17살이 되었을 때는 학대에 가까운 첫 결혼을 하였으며, 1950년에 외동아이를 낳은 후에 유방암을 이겨냈다. 어릴 때부터 마케바의 보컬 능력은 인정을 받았고, 1950년대에 쿠반 브라더스와 맨해튼 브라더스, 그리고 여성 그룹인 스카이라크스와 함께 재즈, 전통 아프리카 음악 및 서양의 대중음악을 혼합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1959년, 마케바는 아프리카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영화인 “컴 백, 아프리카”에 출연하여 국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마케바는 베니스, 런던, 뉴욕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그중 런던에서는 미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해리 벨라폰테를 만나 맨토이자 동료가 되었다. 뉴욕으로 이사를 한 후에는 바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196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녹음하였다. 그리고 당해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정부의 저지로 인해 실패하였다.
마케바의 경력은 미국에서 꽃을 피웠고, 1967년에 발표하여 인기를 끈 “Pata Pata”를 포함하여 몇 장의 음반과 노래를 발표하였다. 벨라폰테와 함께 작업하여 1965년에 발매한 음반 “An Evening with Belafonte/Makeba”로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였다. 마케바는 유엔에서 남아프리카 정부에 불리한 증언을 하였고, 인권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흑표당에서 활동하던 스토클리 카마이클과 1968년에 결혼을 하였고, 백인 미국인들 사이에서 지지를 잃었다. 미국 정부는 마케바가 해외 여행을 하는 동안 비자를 취소하여 마케바와 카마이클이 기니로 이주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마케바는 독립 기념행사를 포함하여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공연을 지속하였다. 또한 아파르트헤이트를 조금 더 명확하게 비판하는 음악을 만들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1990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후, 마케바는 남아프리카로 돌아왔다. 이듬해에는 니나 시몬과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음반을 녹음하고 공연을 지속하였으며, 1992년에는 영화 “사라피나!”에 출연하였다. 1999년에는 유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인도적 차원의 캠페인을 벌였다. 이후 200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콘서트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마케바는 범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최초의 아프리카 음악가들 중 한 명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서양의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으며, 월드 뮤직 및 아프로팝이라는 장르를 대중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하며 몇몇 노래를 발표하였으며, 복귀가 불가능해지고 나서부터는 반아파르트헤이트의 상징이 되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그녀의 음악이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희망의 영감을 주었다."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