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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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8월 6일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합스부르크로트링겐가의 프란츠 2세가 그의 직위를 포기하고 제국 내 모든 국가들과 선제후의 제국에 대한 의무로부터 해방시키면서 사실상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었다. 중세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은 서유럽인들에게 신성 로마 제국이 정당한 로마 제국의 계승국으로서 교황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에 신성 로마 황제가 로마 제국 황제의 정당한 계승자로 인정되어 왔다. 이 로마의 유산을 통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제국의 공식적인 국경을 넘어 기독교 유럽 국가들과 그 너머까지 관할권이 확장된 보편군주제를 주장했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쇠퇴는 수 세기 동안 지속된 긴 과정이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 최고의 근대 주권 국가의 등장은 관할권이 실제 통치되는 영토에 해당한다는 생각을 유럽에 가져오게 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보편군주제를 크게 위협하였다.
18세기 신성 로마 제국은 제국 안팎에서 동시대인들에게 "비정상적" 형태의 정부를 가지고 매우 "불규칙적인" 군주제이자 "병자"로 알려졌다. 당시 제국에는 중앙 상비군과 중앙 재무부가 없었고, 공식적으로 세습되지 않은 군주 직위는 군주가 효과적인 중앙 통제를 행사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동시대 사람들은 제국이 부활하고 현대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신성 로마 제국은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 가담하는 동안 진정한 종말과 쇠퇴를 맞이하게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초기에 스스로 잘 보호했지만, 프랑스와 나폴레옹과의 전쟁은 제국의 재앙으로 판명되었다. 1804년 나폴레옹은 스스로를 프랑스인의 황제라고 선언했고, 이에 같은 해 프란츠 2세는 신성 로마 황제임과 동시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동등성을 유지하고 신성 로마 황제가 두 직위를 능가하는 직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선언했다. 하지만 1805년 12월 오스트리아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프랑스에게 패배한 뒤 1806년 7월에 제국 내의 많은 독일 선제후들이 제국을 이탈하여 프랑스의 위성 국가인 라인 동맹을 형성하였고, 이는 사실상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를 의미하였다. 1806년 8월 프란츠 2세는 나폴레옹이 스스로를 신성 로마 황제로 선언하는 것을 막기 위해 퇴위를 했고, 이는 프란츠 2세를 나폴레옹의 봉신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에 대한 반응은 무관심에 절망까지 매우 다양했다.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수도 빈의 대중들은 제국의 해체에 경악했다. 비록 프란츠 2세의 퇴위가 완전히 합법적이라고 합의되었지만, 제국의 해체와 모든 선제후들의 해방은 황제의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도 여겨졌다. 따라서 제국의 많은 왕자들과 신하들은 제국의 해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일부 평민들은 제국의 해체가 지방 당국의 음모라고 믿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독일에서의 제국 해체는 고대의 반전설적인 트로이아의 몰락과 비교되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종말과 연관시키도 했다. 그러나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는 서로마 제국의 해체와 같이 유럽에 큰 충격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