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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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유대인(리투아니아어: Lietuvos žydai; 히브리어: יהדות ליטא)은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오늘날의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라트비아, 폴란드 북동부 수바우키, 비아위스토크,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뿌리를 둔 유대인이다. 이 용어는 때때로 민족적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아슈케나즈, 비 하시딤의 삶과 학문의 스타일을 따르는 모든 하레디파 유대인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2]
리투아니아 유대인 Lietuvos žydai יהדות ליטא | |
유럽 내 리투아니아(짙은 녹색)의 위치 | |
인구분포 | |
리투아니아 | 2,7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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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
리투아니아어, 히브리어, 이디시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 |
종교 | |
유대교 | |
민족계통 | |
근연민족 | 아슈케나즈 유대인, 러시아 유대인, 우크라이나 유대인, 폴란드 유대인, 벨라루스 유대인, 라트비아 유대인, 에스토니아 유대인 |
빌나 가온 (이디시어로 빌나의 천재)만큼 리투아니아 도시와 밀접한 유대인은 없다. 랍비 엘리야 벤 솔로몬 잘만 (1720년~1797년)은 빌나(오늘날 빌뉴스)를 탈무드어 학습의 세계적 중심지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임 그레이드 (1910년~1982년)는 그가 글을 쓸 도시인 빌나에서 태어났다.
리투아니아 공화국은 크고 영향력 있는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였고, 그 구성원들은 1941년 리투아니아에서 시작된 홀로코스트 동안 국외로 도망쳤거나 살해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리투아니아 유대인 인구는 약 160,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7%를 차지했다.[3] 당시 빌뉴스는 도시 전체 인구의 약 45%인 거의 100,000명의 유대인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다.[4] 빌뉴스에만 110개가 넘는 시나고그와 10개의 예시바가 있었다.[5] 200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리투아니아 전체 인구의 0.12%에 해당하는 4007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6]
빌나(빌뉴스)는 1941년 6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 몇 달 안에, 이 유명한 유대인 공동체는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죽임을 당하면서 황폐화되었다.
2016년 1월 1일 기준으로, 리투아니아의 핵심 유대인 인구는 2,700명(넓은 인구의 0.09%), 확대된 유대인 인구는 6,500명(넓은 인구의 0.23%)으로 추정된다. 리투아니아 유대인 인구는 수도 빌뉴스에 집중되어 있으며, 클라이페다와 카우나스를 포함한 작은 인구 센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