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스카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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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스카니 전투(Battle of Oriskany)는 미국 독립 전쟁 중 1777년 8월 6일 뉴욕 오리스카니에서 벌어진 미국 대륙군과 영국군과의 전투이며, 새러토가 방면 작전의 격전지 중 하나이다. 스탠윅스 요새 포위전 초반에서 니콜라스 허키머가 이끄는 구원 부대는 모호크 강 유역의 트라이언 카운티 민병대와 오나이다 족 800여명으로 구성된 포위망을 뚫기 위해 요새로 접근했다. 영국군 사령관 배리 세인트 리저는 하나우 재거(Hanau jäger, 경보병)로 구성된 분견대를 존 존슨의 뉴욕 왕실 연대와 이로쿼이 연방 및 북서부 동맹 인디언과 인디언 레인저 부대로 구성된 방해 부대를 편성하여 450여명의 요격대를 조직을 승인하였다.
오리스카니 전투 Battle of Oriskan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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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전쟁의 일부 | |||||||
오스카니 전투의 허키머, 1901년경, 프레드릭 코파이 요흔 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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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대륙군 오나이다 족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이로쿼이 연맹 * 모호크족 * 세네카족 휴런족 | ||||||
지휘관 | |||||||
니콜라스 허키머 |
존 존슨 경 존 버틀러 조셉 브랜트 | ||||||
병력 | |||||||
720명-740명 트라이언 카운티 민병대 60~100명 오나이다 족[1] | 500명[2] | ||||||
피해 규모 | |||||||
385명 전사 50명 부상 30명 포로 30 captured[3] |
65명 인디언 사상 영국군 7명 전사, 21명 부상, 포로, 실종[4] |
왕당파와 인디언 부대는 스탠윅스 요새에서 동쪽으로 약 10 km 떨어진 현재의 오리스카니 마을 근처에 있는 작은 계곡에서 허키머의 부대를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대륙군은 450여명의 손실을 당했고, 한편 영국 측도 로열리스트, 인디언을 합쳐 150여명이 전사 또는 부상당했다. 전술적으로는 영국 부대의 승리가 되었지만, 그 부대가 없는 동안 스탠윅스 요새에서 출격한 대륙군 부대가 영국군의 숙영지를 습격하여, 특히 인디언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그 공과를 논하기가 애매하게 되었다.
이 전투는 참전 병력 거의 전원이 북아메리카의 주민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소규모 전투 중 하나였다. 즉 로열리스트와 패트리어트 그리고 양측의 인디언 동맹 간의 구도였으며, 영국 정규군은 참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로쿼이 연방에게는 내란의 시작을 의미했으며, 루이스 대령과 한 예리가 이끄는 오나이다 족이 미국 측에 연대하여, 다른 이로쿼이 연방 부족국가들과 싸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