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침공 (1775년)
미국 독립 전쟁 중 대륙군의 작전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퀘벡 침공(영어: Invasion of Quebec)은 미국 독립 전쟁 초기 1775년부터 1776년에 걸쳐 신설된 대륙군의 주도로 이루어진 최초의 작전이다. 전략 목표는 영국령 퀘벡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며, 프랑스어를 하는 캐나다인을 13개 식민지 측에 끌어들여 혁명에 참가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륙군에서는 2개의 원정대가 파견되었다. 한 부대는 리처드 몽고메리 장군의 지휘로 1775년 8월 하순에 타이컨더로가 요새에서 출발했다. 9월 중순에 몬트리올의 남쪽에 있는 주요 방어 지점인 세인트존스 요새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11월에 이 요새를 함락시킨 후 영국군의 가이 칼튼 장군은 몬트리올을 포기하고 퀘벡 시로 도망했다. 몽고메리는 몬트리올을 점령할 때 칼튼 장군을 잡을 뻔했다. 또 다른 부대는 베네딕트 아놀드의 지휘로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의 케임브리지를 출발해 메인 황야를 간신히 통과하여 퀘벡 시에 도착했다. 광야를 통과하면서, 힘든 행군을 위해 낙오된 군인은 굶어야 했으며, 물자 및 장비 모든 것이 부족했다.
퀘벡 침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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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전쟁의 일부 | |||||||
퀘벡 전투 (1775년)에서 리처드 몽고메리가 죽은 것을 그린 그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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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영국령 퀘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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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존 버고인 가이 칼튼 |
리처드 몽고메리 † |
두 부대는 12월 퀘벡 앞에서 합류하여, 1775년 12월 31일 새해 전야 폭설 속에서 퀘벡 시티를 급습했다. 이 전투에서 몽고메리는 전사했고, 아놀드는 부상당했다. 그러나 시를 지키는 영국군은 거의 손실이 없었고, 대륙군은 비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이후 아놀드는 쓸모없는 시의 포위를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 홍보 활동을 통해 왕당파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또한 몬트리올에서 데이비드 우스터 장군의 실정에 대륙군을 비방하는 자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도 불만의 소리가 높아졌다.
영국군은 1776년 5월에 퀘벡 지역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존 버고인 장군과 독일인 용병을 포함한 수천 명의 원군을 파견했다. 증원군을 얻은 칼튼은 대륙군에 반격을 시도하였고, 천연두로 조직이 흔들리고 있었던 대륙군을 7월에는 타이컨더로가 요새까지 밀어 넣으려 했다. 한편 아놀드 지휘 아래 대륙군은 영국군의 행보를 늦추는데 성공, 1776년 타이컨더로가 요새에 대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침공 작전의 종료 후 버고인이 허드슨 강 유역의 지배를 목표로 한 1777년의 새러토가 방면 전략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