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한국의 군인, 청산리 전투의 지휘관 (1889–1930)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김좌진(金佐鎭, 1889년 12월 16일 (음력 11월 24일)~1930년 1월 24일)은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의 군인이다.
간략 정보 김좌진, 임기 ...
김좌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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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한민족총연합회 회장 겸 총재 | |
임기 | 1929년 2월 15일 ~ 1929년 11월 1일 |
주석 | 이동녕 대한 임정 수반 |
총리 | 김구 대한 임정 총리 |
장관 | 김구 대한 임정 내무총장 |
차관 | 이유필 대한 임정 내무차장 |
이름 | |
별명 | 자(字)는 명여(明汝) 호(號)는 백야(白冶)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89년 12월 16일(1889-12-16) |
출생지 | 조선 충청도 홍주목 |
사망일 | 1930년 1월 24일(1930-01-24)(40세) |
사망지 |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베이젠다오 하이린시 |
국적 | 대한제국 |
경력 | 군인 독립운동가 시인 저술가 문장가 |
정당 | 무소속 |
부모 | 김형규(부), 한산 이씨 부인(모) |
형제자매 | 김경진(형), 김옥출(누나), 김동진(남동생) |
배우자 | 초배 부인 오숙근 계배 부인 나혜국 측실 김계월(일명 박계숙) 측실 이씨 |
자녀 | 2남 2녀 (서장남 김두한, 서장녀 김석출, 적차남 김철한, 적차녀 김강석) |
친인척 | 김옥균(9촌 숙부) 김종진(족제) 김을동(손녀) 송일국(외증손자) 송송이(외증손녀) |
종교 | 유교(성리학) → 대종교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독립군 참장(參將)[1] 전역 |
주요 참전 | 청산리 전투 |
상훈 |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제1급()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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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現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휘관이었으며, 김동삼, 오동진 등과 3대 맹장(猛將)으로 불리기도 하였다.[2]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3]에 의해 피살되었다. 본관은 신 안동. 김상용의 11대손이며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다.
나이 17세(1906년)에 그는 집안의 가노를 해방 및 땅을 분배하였고 민족적 자립을 위한 무장 독립 운동의 선봉에도 서는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도 활발히 펼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한제국 교육 사회 사업 르네상스 혁신 선구자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4] 형평사 운동에도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