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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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교로 도르곤(만주어: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ᡩᠣᡵᡤᠣᠨ, 愛新覺羅多爾袞, 1612년 11월 17일(음력 10월 25일) ~ 1650년 12월 31일(음력 12월 9일))은 청 제국 초기의 명장, 정치가이다. 작위는 예친왕(和碩睿親王, Hošoi Mergen Cin Wang)이며, 시호는 충(忠), 정식 시호는 예충친왕(睿忠親王)이다. 후금의 초대 한인 누르하치의 14남이며, 세 번째 정실 효열무황후 아바하이의 소생이다.
예충친왕 睿忠親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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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친왕(睿親王) | |
재위 | 1636년 ~ 1650년 |
섭정왕 | |
재위 | 1643년 ~ 1650년 |
이름 | |
묘호 | 성종(成宗, 추탈) |
시호 | 무덕수원광업정공안민입정성경의황제 (懋德修遠廣業定功安民立政誠敬義皇帝, 추탈) 예충친왕(睿忠親王, 복권) |
신상정보 | |
출생일 | 1612년 11월 17일 |
사망일 | 1650년 12월 31일 |
부친 | 천명제 |
모친 | 효열무황후 |
배우자 | 경효충공의황후 |
청년 시절부터 이복형 홍타이지를 따라 여러 전쟁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그 공으로 친왕에 책봉되었고, 팔기군 중 정백기와 양백기를 관장하였다. 1643년(숭덕 8년) 홍타이지가 급사하자, 조카이자 홍타이지의 장자 숙친왕 호오거(Hooge, 豪格)와 황위를 놓고 경쟁을 벌였으나, 결국 홍타이지의 9남이던 어린 조카 순치제를 대신 옥좌에 올리고 자신은 섭정왕이 되어 죽을 때까지 사실상의 황제로써 실권을 행사하였다.[1]
이후 명나라가 멸망하고 입관(入關)하여 중원을 차지하였고, 청 제국의 중원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또다른 섭정왕이었던 정친왕 지르갈랑(Jirgalang, 濟爾哈朗)의 실권을 빼앗고, 경쟁자인 호오거 역시 제거하여 옥사케 하였으며, 황부(皇父), 즉 황제의 아버지라 자칭하는 등 순치제의 섭정이란 명분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1650년(순치 7년)에 죽었다.
사후 황제로 추숭되어 묘호는 성종(成宗)이고 시호는 무덕수원광업정공안민입정성경의황제(懋德修遠廣業定功安民立政誠敬義皇帝)라 올려졌으나, 곧 친정을 개시한 순치제에 의해 묘호와 시호를 포함한 모든 명예를 추탈당하고 부관참시되었다. 그러나 사후 100년이 넘은 1778년(건륭 43년)에 다시 복권되어 친왕의 작위와 시호를 추증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