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엡스타인
영국의 음악가이자 비틀즈 매니저 (1934–1967)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브라이언 새뮤얼 엡스타인(영어: Brian Samuel Epstein, 1934년 9월 19일 ~ 1967년 8월 27일)은 영국의 음악 사업가로 비틀즈의 매니저다. 1961년 11월 캐번 클럽에서 점심시간에 비틀즈와 처음 마주했다.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인상을 받았고 큰 잠재력이 있다고 느꼈다.[1] 엡스타인은 런던 내의 거의 모든 음반사에서 거절을 당했지만, EMI 산하 팔로폰 레이블의 중역 조지 마틴과 회합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62년 5월 마틴은 비틀즈와 계약 체결하기로 합의했고, 이는 엡스타인의 그룹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라는 강한 신념이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2]
브라이언 엡스타인 Brian Epstei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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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브라이언 새뮤얼 엡스타인 (Brian Samuel Epstein) |
출생 | 1934년 9월 19일(1934-09-19)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
사망 | 1967년 8월 27일(1967-08-27)(32세) 잉글랜드 런던 |
성별 | 남성 |
국적 | 영국 |
직업 | 사업가(매니저) |
웹사이트 | www.brianepstein.com |
비틀즈의 초기 성공은 엡스타인의 매니지먼트 스타일의 결과로 탄생했고, 밴드는 그를 막역하게 신뢰했다. 비틀즈의 사업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고 종종 비틀즈 내 개인간의 분란을 중재하는 일도 맡았다. 비틀즈가 엡스타인에게 보인 절대적 신의는 결국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밴드가 계약서 서명 전 꼼꼼히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3] 1963년 차트 정상에 도달한 〈Please Please Me〉의 성공 이후 엡스타인은 노던 송스의 창립을 권유했다. 이 회사는 1963년에서 1973년까지 모든 레논-매카트니 작곡의 판권을 통제했다. 음악 출판인 딕 제임스와 그 파트너 찰스 실버가 회사의 지분 가운데 51%를 소유했고, 레논과 매카트니는 각각 20%를, 엡스타인은 9%를 소유했다.[4] 1969년 레논과 매카트니는 ATV 뮤직 퍼블리싱에게 모든 저작권을 빼앗겼다. 1967년 엡스타인의 타계는 비틀즈의 와해의 시작점이자 모든 비틀즈 일원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1997년 폴 매카트니는 "만일 다섯 번째 비틀즈가 있다면, 그것은 브라이언일 것"이라고 말했다.[5]